"루티. 넌 절대로 무협물같은 거 보지마."


이전에 리아에게 들었던 말이다.

우리는 그런 세계를 겪어봤으니까,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무렴, 누구나 같이 그런 일을 겪었다면 그랬겠지.


"라디, 오늘도 읽고 있구나."

"아, 오늘도 정독하고 있었습니다."

라디는 나와 교사들에게 말할 땐 어느정도 말투를 푼다.

다른 건 아니고... 처음에 나를 어떻게 칭해야할까 할 때 '장문인'이라고 칭했다가 

서로 뻘쭘... 뻘쭘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그 뒤로 말투를 풀고 말하는 것을 연습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그거... 어떤 내용이니?"

갑자기 궁금했었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이라고 하던가.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까?"

라디아타는 옆에 쌓아뒀던 '화산회류' 1권을 건냈다.

표지에는 매화가 피어있는 풍경과 그 중앙에 주인공으로 보이는 소년이 목검을 잡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읽고 난 뒤, 리아가 맞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떠십니까?"

"..."
"현실과는 많이 다르네."

"현실과 동떨어져 있긴 하지만... 원래 '판타지'의 한 갈래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묘사가..."

"아니."

그 때, 교장님의 표정은 유달리 차가웠다.

단순히 배경이나 설정의 비현실성이 아닌, 다른 것을 말하듯이.

하지만 나는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달라."

"너무나도 달라."


"..."
"현실과 다르지만, 이런 게 더 멋지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 속 사람들도, 현실에 맞서며 자신의 '협'을..."

"..."
"미안, 내가 무협은 잘 몰랐네... 처음 읽어봐서..."

"맞아, 현실에 맞서는 것도 멋있지."
"라디아타도, 너만의 길, '협'을 걸어가길 바래."


씁쓸한 격려였다.



"끄아아아아악!!!!!!!"


어느 아침, 성당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바로 달려가보니, 앞에는 종교부장 카렌과, 다른 여학생 한 명이 있었다.


몸이 불타오르며, 끔찍한 고통을 호소하는...

누가 봐도...


"멈춰."


"읏!"


"허억...허억..."

여학생은 가쁜 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괜찮니?!"

몸에는 상처가 나지는 않았다.

분명 카렌의 고유 마법이다.


"카렌."


"... 속죄를 방해하시다니..."

"말했지."
"선의는 무례하지 않아."

"그래도..."

"카렌."

심장이 떨리는 느낌.

마치 목을 붙잡힌 채로 대화를 나누는 느낌.


속죄해야할 죄는 남았으나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
"어째서 그러시는 거죠... 저 자는..."

"..."
"카렌."
""


할 말이 많았고, 그렇기에 장소를 옮겨야 했다.


저 아이가 광신을 가질 사연이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 광신은 안 된다.


안 된다.

그래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