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흉내 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거울을 앞에 두고 보는 기분이다.
겉모습은 치오리를 따라 하려고 필사적이었지만 완전하다고 볼 수 없지만, 부족한 부분을 연기력으로 채우니 소름이 돋을 만큼 똑같았다.

목소리, 행동, 사소한 습관들마저 치오리를 따라 하니. 도플갱어가 따로 없다고. 기분 나쁠 정도로 불쾌했다.

"무슨 연극이길래 내 흉내를 내는 거야? 한물 간 스타 치고는 제법이네. 나라고 해도 믿겠는데."

당사자가 인정할 만큼 푸리나는 완벽한 치오리의 레플리카다.

"보여주려고 온 거야? 이제 다 봤으니까 가 봐. 바쁘거든."

"이 연극에는 빈자리가 있어서 말이야. 네가 도와주면 좋겠는데."

"난 연극에는 자신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는데 미안 해."

"그럼 하루 만 부티크를 빌려주지 않을래? 필요하거든 연습에."

"부티크를 빌려달라고?"

순간 치오리는 이유 모를 살의를 느껴입을 다물고 자신을 쳐다보는 푸리나에게 겁을 느꼈다. 자신과 같은 눈을 하고 있지만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정말로 알고 있는 푸리나가 맞기나 한 건지. 푸리나에게 있을 리 없고 느낄 수 없는 살의, 공포가 엄습해 왔다.

거절하면 안 될 거 같았다. 부탁이 협박 처럼 전해졌다.

"하루면 돼. 하루쯤 쉰다고 생각하고 빌려주면 안 될까?"

"왜… 부티크가 필요한 거야?"

"좋은 대본과 명배우에게 어울리는 무대가 필요할 뿐이야. 부탁할게. 치오리."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알고 있는 푸리나의 얼굴을 하고 방긋 웃었다.
그제야 안심하는 치오리는 하루쯤이야 괜찮겠지. 라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푸리나는 자신이 집필한 연극의 시나리오를 연습하고 싶은데 리얼리티를 위해 부티크에서 연습하고 싶다고 했고 치오리는 마침 비슷한 여사장을 연기하고 있어 참고 모델로 삼은 거라며 설명했다.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치오리가 이번만큼은 변명에 가까워 조금 신경이 쓰였다.

"알겠어.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치오리는 서랍에서 열쇠를 꺼내 푸리나에게 건넸다.

그날 밤 치오리는 부티크를 마감하고 돌아가는 길에 무명의 이방인과 마주쳤다.
치오리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무명은 이별 직후라 치오리가 어색해 어쩔 줄 몰라하며 평소같이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부티크에서 한번 분풀이 식으로 쏟아 낸 일도 신경 쓰였다.

"안녕."

치오리가 먼저 말을 걸어오자 무명도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눈을 마주치자 귀신이라도 본 사람 같이 질려 있었다.

"왜 그래?"

치오리가 다가오자 무명이 뒤로 물러났다.

푸리나에게 숙소에서 반강제로 관계를 요구 당했고 관계가 끝난 직후 푸리나와 치오리 사이에서 혼란을 느껴. 지금 눈앞에 있는 치오리가 진짜인지 연기를 하는 푸리나인지 헷갈렸다.

치오리에게서 푸리나의 모습이 겹쳐 보이니. 미칠 지경이다.

"너… 치오리 맞지?"

"너 정말 괜찮은 거야? 보고도 모르겠어. 나라고 치오리."

무명의 상태가 이상했다. 덜덜 떨며 다가와 손을 들어 뺨에 가져갔다. 손이 떨고 있었고 이리저리 더듬어가며 만져도 치오리는 말없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라면 기분 나쁘다고 쳐 냈어야 하지만 안색이 질리고 무슨 일인지 떨고 있는데 그렇게 매몰차게 대할 수 없었다.

"치오리… 맞구나…"

"말했잖아. 나라고, 치오리."

"우욱!"

무명은 제자리에 주저앉더니 곧 위에 있는 걸 토해내며 숨을 쉬지 못 하는 사람 같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엇 때문에 발작이 온 사람 같았다.

"괜찮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정신 좀 차려 봐! 야!"

치오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치오리인지, 푸리나인지 헷갈렸다. 자신을 걱정하는 걸로 봐서 푸리나라는 확신이 서기도 했다.

숙소에서 들었던 푸리나의 광소가 시끄럽게 머리에 울렸고. 치오리와 푸리나의 모습이 뿌옇게 겹쳐 보이며 의식이 끊겼다.

"……… ………"

치오리인가, 푸리나인가. 정신을 차렸어도 여전히 헷갈렸다.

혼란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발작 까지 했다.

"괜찮아?"

걱정스럽게 보는 치오리가 건네는 물컵을 받아. 냉수를 들이켜 애써 진정한다.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게 옳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평소 같지 않아 보이는데."

"…그냥 일이 있었어. 혼란스러운 일이."

"얘기하기 어려운 일이야?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이야기할 수 없지. 푸리나가 지금 하는 이상한 행동에 대해 치오리가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치오리와 관계는 끝났지만 그래도 그동안 일을 말할 수 없다.

아직은 마음에 미련 같이 치오리가 남아 있어. 정리되지 않았다.

"말하기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돼."

치오리도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비록 우리가 깨진 관계라도 해도, 친구 라는 관계는 지속되고 있잖아. 상담 정도는 들어 줄 수 있어."

쉬었다 가라고. 일어나려는 치오리의 팔을 잡았다.

"이거 놔."

지금도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치오리를 연기하는 푸리나인지, 치오리 본인인지. 두 사람이 겹쳐 보였다.


치오리는 뿌리치지 않고 복잡한 얼굴을 하고 가만히 있었다.
뿌리치기에는 붙잡은 손이 떨고 있었기 때문에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다.

돌아서서 치오리는 조심스럽게 잡은 손을 내려놓았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없어."

"알고 있어."

"이 이상은 친구 사이를 넘는 거야. 휴식처를 잠시 내어 줄 수 있어도, 위로는 해 줄 수 없어. 네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나는 잘 몰라. 그래도 위태롭다는 건 알지."

"아무리 생각해도 헤어진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아."

"…그래. 그렇게 생각해도 할 말이 없네. 나도 노력은 해봤지만 2개월의 시간 동안 해내지 못했어. 사랑이 뭔지 연애의 감정이 무엇인지."

하지만 푸리나에게 느꼈다. 치오리가 사랑을 알았을 때, 연애의 감정을 알게 됐을 때 모습을. 그 모습이 비뚤어진 광기라고 해도 푸리나를 통해 사랑을 알게 된 치오리의 모습을 보고 가능성을 보았다.

"조금만 더 노력할 수 없어?"

대답 없이 치오리는 옆에 앉았다.

"조금은 기뻣어. 이런 나를 제대로 봐주고 노력해준 건 네가 처음이야. 너는 겉으로 보이는 내가 아니라 결점투성이의 나를 보며 맹목적인 사랑을 구애 했어. 너를 받아들인 이유도 사실 나를 제대로 봐주는 네게 호기심을 느껴서야."

그래서 치오리도 노력했다. 자신을 봐주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열심히 사랑을 알도록 노력하고 찾아보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모르겠더라. 이 관계가 계속되도 지치고 힘들어지는 건 너야. 나한테 아까울 만큼, 값을 매길 수 없는 게 너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미련을 내려 줘."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떻게 미련을 놓으라는 거냐.

"일방적이야. 여전히. 너는 늘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더라."

지칠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겠지. 분명 순탄하지 않을 거라고 치오리를 처음 본 순간 확신 했다.
이를테면 시련이라는 거다. 치오리 라는 세상에 하나뿐이 없는 보물을 얻는 시련. 그 시련을 극복해 치오리를 얻고 이후로 같이 걸어가면 된다고.

"내가 더 애 쓰면 돼. 너는 따라오기만 하면 돼."

"솔직히 너한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아. 지금도, 조금이라도 기울여야 하는데 동요도 없어. 입으로 네가 좋다고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납득이 안 돼. 이런 결말은."

"짧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너는 좋은 사람이야. 나한테 아까울 만큼 좋은 사람이야. 같이 있으면 즐겁겠지. 그럴 거야."

치오리가 팔을 뻗어 목을 감아 침대로 누웠다.

분명 흥분되고 이성이 고조 되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어째서인지 감흥이 없었다.

이전보다 확실히 없었다. 순간 푸리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소름이 돋아 일어나려고 하자 치오리가 팔을 당겨 얼굴을 가까이했다.

"마지막 기회야. 너 없이 살 수 없게 만들어 봐. 네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망가트려 줘. 할 수 없다면 깨끗하게 포기해."

"그런데 너… 정말 치오리 맞아?"

"내가 누구로 보이는데?"

이제 나는 레플리카와 진짜를 구분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