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개마무사


마갑까지 갖춘 기병은 삼국시대에는 적극적으로 운용하였지만 고려시대에는 어땠을지 궁금해서 직접 기록을 찾아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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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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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 권제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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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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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 때 군 편제로서 5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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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병마사 왕총지가 동반과 남반의 관리 및 마군의 정기적 교습을 건의하다


음력 1050년 10월 미상

4년 10월에 도병마사 왕총지가 아뢰기를,
“『좌전』에서 이르기를, ‘평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적이 쳐들어오지 않음을 믿지 말고, 내가 방비되어 있음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는 매년 중추가 되면 동반과 남반의 원리들을 교외로 불러 모아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히게 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여러 위의 군사들은 나라의 조아이니 마땅히 농한기를 틈타 금고·정기·좌작의 규칙을 가르칠 것입니다. 또한 마군은 모두 연습하지 않으니, 청하건대 먼저 선봉마병을 선발하여 1대마다 말의 갑옷 10벌을 지급하여 달리고 쫓는 것을 익히게 할 것입니다. 이에 어사대·병부·6위로 하여금 그 교열을 관장하도록 하십시오.”
라고 하니, 이를 따랐다.


11세기 고려 문종 시기에는 도병마사 왕총지가 선봉마병을 선발하여 1대마다 마갑 10벌을 지급하여 교습할 것을 청하여 이를 시행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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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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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전 권제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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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척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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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척준경이 여진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고 승진하다


숙종 9년-1104년에 평장사 임간을 따라 동여진을 정벌하였는데, 아군이 패배하자 척준경은 임간에게 부탁하여 무기와 갑옷 입힌 말을 청하여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 한 명을 베고 아군 포로 두 명을 되찾았다. 마침내 교위 준민·덕린과 함께 활을 쏘아 각각 한 명씩을 거꾸러뜨리자 적들이 약간 물러났다. 척준경이 퇴각하는데 적이 100기로 추격해오니 또 대상 인점과 함께 적장 두 명을 활을 쏘아 죽였다. 적들이 감히 전진하지 못하니 아군은 무사히 성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12세기 고려 숙종 시기에는 척준경이 마갑을 갖추고 적진으로 돌진해서 적장을 베고 포로들을 구하는 등의 공을 세웠던 사례도 있었음


이렇듯이 고려시대에도 마갑을 갖춘 기병을 활용한 실제 사례들이 기록으로 남아있긴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