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피셜 깊이 잠든 무상자(IX)는 그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않고 

형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의지조차 없다. 不瞥视任何人祂无貌无形,更无意志可言가 원문인데 

대충 비슷한 말이다 




깊은 하늘과 별바다를 거니는 이 신비한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인식의 제한으로 인해 지적 생명은 에이언즈가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운명의 길을 거닐며 어떤 이념의 형태로 헤아릴 수 없는 위력을 행사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결국 전해져오는 신화에서 에이언즈는 고도로 응집된 철학적 개념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누군가 에이언즈가 주관하는 운명의 길에 발을 들인다면, 은하의 광년을 초월해 보내오는 시선처럼 그 아득한 감응을 이어받을 것이다. 많은 사람은 이를 에이언즈와 평범한 사람 간의 유일한 접점이라고 생각한다.

공식 설정으론 평범한 인간은 운명의 길에 첫 발을 내디딜 때 말고는 

인식의 제한으로 인해 직접 볼 수 없다고 한다.

시뮬레이션 우주에서도 아키비리로서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는 것이니 말이다. 


아케론의 공식 별무리 기행에 나온 검은 태양은 무엇인가? 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검은 태양 그 자체가 IX가 아닌, 

블랙홀로 인해 모든것이 사라질 것 이라 깨달은 사람들의 마음에 그림자를 뻗은 '공허함'이 곧 IX라 생각된다. 


대화 장면에서도 아케론이 직접 수천 가지 IX의 표징(겉으로 드러나는 형태) 중 하나일 뿐이라 말한다. 

블랙홀이 공허의 표징중 하나라면 결말을 형상화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 또한 표징일 수 있을 것 같다. 




의지조차 없고 눈길도 주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사도가 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또는 IX의 의지를 대변해 봤자 파멸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기에

부트힐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도라 작중에서 표현한다, 


여기서 2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아케론이 이례적으로 IX의 눈길을 받고 운명의 길 에너지를 흡수하여 사도가 되었을 경우,

그 외의 방식으로 사도와 비견될 힘을 얻었을 경우가 있다.



여기선 2번째 경우라 가정하고 해석을 해보겠다. 

스스로를 정체를 숨긴 사도가아닌 더 먼 길을 나아가 무에 물들었다는걸 말한다 


여기서 행적에 관한 공식 설정을 보자 

운명의 길에서 멀리 갈수록 기적이 더 선명해진다는 설정이 있다 


약간의 비약이지만, 어찌보면 그 운명의 길에서 가장 멀리 나아간 자는 에이언즈 이기에 

산봉우리를 넘나드는 해일을 만드는 조화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허의 길에서 멀리 나아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티어난과의 대화에서 아케론의 본명인 보센모리 즉 망자의 강을 지키며 

공허에 물든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공허와 작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개척하고 이끌어 주는 것

그것이 자신의 삶의 붉은빛의 근원이라 말한다 



이는 존재의 이유이며 아케론은 모두에게 더 나은 결말을 찾아가는 중이라 묘사한다



이 존재의 색, 삶의 의미야 말로 공허 앞에서도 색이 유지되는 유일한 답이라고 한다  

아케론의 스킬 이미지가 꽃인 이유도 목에 꽃을 박고다니는 디자인의 이유도 

생명 자체를 만개한 꽃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즉 아케론의 삶의 이유는 

삶이 덧없이 흐름을 앎에도 그 짧은 삶들의 진정한 이유를 찾기 위해

삼도천에서 망자들을 인도하며 답을 찾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깨닫는 피안의 끝에서 IX를 죽일 것이라 말한다 

모든 이들에게 더 나은 결말을 위하여 


사람은 태어나 스스로의 본질을 찾아간다고 말하지만 

꼭 그 기한이 정해져 있을 필요 있을까 



아무튼 이 수많은 사람들을 삼도천에서 인도하며 수많은 만개한 꽃을 봐온 아케론은

공허 운명의 길에서 IX 다음으로 멀리 나아갔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약:

아케론은 공허 운명의 길에서 존나 멀리 나아갔기에 사도랑 비견되는 존재가 되었다 볼 수도 있다 

이는 에이언즈 조차 운명의 길에서 가장 멀리 나아갔기에 조화를 부릴 수 있다는 약간의 비약이 바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