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죽음이다.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내 인생을 한 단어로 요약하라면 그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망자 기사다. 망자는 더럽고, 추악하며, 인간을 향해 무분별한 칼날을 휘두른다. 그러나 난 멀쩡하다. 딴놈들과 달리 정신이 박혀있다.

망자는 죽지 않는다. 다만 걸을 뿐. 세계의 어딘가에 있는 망자들의 세계를 향해 걸었다. 그들의 경로에 있는 건 모조리 파괴당했다.

세계가 망조로 치닫자 망자가 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처음에는 하나로, 다음에는 집단으로, 그 다음에는 행렬로, 종국에는 군대가 되어 나타났다.

나도 그들과 별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저 행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무의미해보였다. 있지도 않은 망자의 낙원을 찾아 무분별한 파괴 행위를 일삼는 자들이 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나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난 망자들과 다르다. 그걸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다 한들 어차피 망자다.

나는 그들에게 더럽고 추악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렇게 방랑하다가 흐드러지게 핀 꽃밭에 도착했다. 하이델 평원이라는 곳이다.

'인간이다!'

꽃 구경도 마음대로 못했다. 나는 인간 여자를 보고 몸을 숨겼다. 옷차림을 보니 성직자다. 성직자들은 모두 나를 혐오한다.

"망자 아저씨."

그런데 투구 위로 따스한 촉감이 전해져왔다. 그녀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것도 따스한 미소를 지으면서.

"으, 으응."

어색하게 입을 연다. "죄송합니다"라는 말 말고 다른 말을 한 게 오랜만이었다.

"아저씨는 아직 미치지 않았네요."

"그런 셈이지."

그녀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이후로도 만남은 계속 되었다. 나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나의 구슬픈 여정을 들려줬다. 별로 재밌는 얘기도 아닌데 그녀는 늘 웃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일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신이 난 채 꽃밭으로 갔다. 그런데 오늘따라 항상 밝았던 그녀의 낯빛이 어둡다.

"망자 아저씨."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가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장 내일 망자의 군세가 마을에 들이닥칠 예정이라 피난을 가야한다고 했다. 앞으로 영영 못 볼지도 모른다.

"아저씨, 아저씨는 저 바보같은 망자들이랑 다르지?"

"어, 어어. 그렇지."

"그럼, 아저씨가 저 망자들을 이끌고 낙원을 찾아 줘. 그렇게 해서 세상이 조금 더 살만 해지면, 여기서 만나자."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등을 돌려 도망치듯 멀어졌다. 나는 그녀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꼭이다!!"

내 외침에 그녀가 등을 돌렸다. 그녀가 늘 그렇듯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응!!"

우리 둘은 그 길로 갈라졌다. 나는 처음으로 망자의 군세에 합류했다. 그들을 지휘해 망자의 낙원이 있을법한 곳으로 갔다. 인간이 사는 곳은 최대한 비껴갔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괴로운 나날이었다. 강력하고 기괴한 적들의 무기에 수천 번 베이고 찢기며, 용암과 불에 산채로 몸이 불타는 고통을 생생히 느꼈다.

그 기나긴 여정 끝에 우리는 망자의 낙원을 찾았다. 우리에게 영원한 죽음이라는 안식을 가져다 주는 심연의 구덩이였다.

망자들은 모두 그 구덩이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죽었다. 영겁의 고통의 끝에서 비로소 안식을 찾았다.

단 한 명의 망자, 나만 빼고.

나는 심연의 구덩이 속에서 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등을 돌렸다.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이델 평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언젠가 돌아올 그녀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건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다.

언제까지고 그녀를 기다릴 것이다.
그 아름다운 미소를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수천의 시간이 흘렀다.
하이델 평원은 모험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장소다.
세계의 마지막 망자, 게드윈이 있는 곳이었었으니.
먼 옛날 이성을 잃은 녀석은 모험가들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뱉으며 덤벼들었다고 한다.

"아직 있었군. 이곳은 약속된 장소다. 나와 그녀만이 올 수 있는."

망자는 성별 구분이 없다. 게드윈의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 이미 미쳐버린 망자에게는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니, 이제는 아무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