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정말이지 힘들었어, 에리카. 널 찾느라고."


 후드티 모자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그 소년은 휴대폰을 쥔 채 현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에리카라고 불린 여자.

 그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소년을 바라본다. 소년이 신발을 신은 채 거실에 선 것을 봤다가 다시 시선을 올려 소년의 어깨 너머를 바라본다. 소년 뒤에 선 중년남자를 향해 말한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험악해보이는 남자다.


 "......이 애 누구야? 얘가 오늘 손님?"

 "말걸어봤자 소용없어, 저녀석. 앞으로 한시간 동안은 내 노예거든."


 소년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에리카에게 답한다. 

 에리카는 헤에하고 고민하는 듯한 소리를 낸다.


 "나이에 비해 꽤나 변태인걸. 저 무서운 아저씨까지 노예로 부리겠다니. 대체 얼마나 돈을 쓰면 그렇게 할 수 있는거지?"

 "그건 내가 물을 말이라고, 에리카..."


 소년이 이를 으득 악물며 외친다.


 "난 절망했어! 네가 이런 여자인줄 몰라서!"

 "......난 당신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데. 그래서 저 남자와 나, 둘을 하룻밤 동안 노예처럼 부리겠다는거지? 대충... 예상은 가지만 뭘 어떻게 할지는 말해줬으면 하네."

"윽... 에리카, 너, 돈이 그렇게나 좋은거야? 얼마나 돈을 받으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거지!"

 "이런 짓이라니?"


 소년이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에리카의 발치에 집어던진다.

 거기에는 침대에서 흐트러진 자세로 엎어진 에리카의 모습이 찍혀있다. 에리카는 처음으로 동요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사진을 내려다본다. 사진에 찍혀있는 남자들은 전부 다 다른 남자다. 하지만 전부 이 방의 침대에서 찍힌 것이다.


 "말해! 널 믿고 지켜봐준 팬들의 사랑을, 얼마에 팔아넘겼는지!"

 "글쎄, 얼마일까."

 "말해라고!"


 소년이 에리카의 멱살을 쥔다. 에리카는 차가운 눈초리로 소년을 내려다보다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다.


 "정말 최악이네. 네가 내 팬이었다는 건 잘 알겠어. 그런데 할 말이 그것 뿐이야?"

 "에리카, 너..."

 "팬들의 사랑을 얼마에 팔아넘겼냐고? 그건 네가 더 잘 아는거 아냐?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


 에리카가 소년의 이마를 검지로 툭툭 두드린다.


 "이 방에 들어올 권리를 손에 넣기 위해서 얼마를 지불했지? 난 언제쯤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되는거지? 소속사는 나를 여기서 내보내줄 생각은 있는건지?"


 그 말에 소년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말야, 최악이네. 내 팬이었다고 말하는 주제에 날 최대한으로 더럽힐 수 있는 권리를 산거잖아."


 에리카가 발치에 떨어진 사진을 발바닥으로 두들긴다.


 "이녀석들이랑 네가 뭐가 다르단거지? 넌 그저 죄책감을 덜고 싶을 뿐인거 아냐? 내가 팬인 너를 속였으니까, 내 가랑이 사이를 찌를 권리가 있다고? 그딴 자기합리화는 그만두고 뭘 하고 싶은지나 말해. 네가 얼마를 지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돈 값만큼은 해줄테니까."

 "얼마 받고 있는지 몰라...?"

 "모른다고. 알고 싶지도 않고. 어차피 나한테는 한푼도 안올테니까. 매달 나가는 감금비로 빚만 늘어나고 있을테니까."

 "감금비?"

 "이 아파트 월세랑 관리비 500만원. 그리고 텔레비전 수신료 500만원. 한때 아이돌이었던 에리카님은 이렇게 매달 천만원을 빚지면서 감금당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포기 못해! 드라마를 보지 못하면 미쳐버릴 것 같거든!"

 "텔레비전 수신료가 500만원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년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현관 밖에 있는 중년남자는 미동도 없이 서 있다. 소년이 손에 든 스마트폰 어플 버튼을 하나 누르고는 남자에게 묻는다.


 "텔레비전 수신료가 500만원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돈을 내면서 감금당하고 있다니 그게 뭔데!"


 중년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한다.


 "에리카는 베게 영업을 망쳐 저희 소속사에 큰 피해를 끼쳤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영업손실분을 메꾸게 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수신료 500만원 안에는 이 영업소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포함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감금 또한 잘못된 인식입니다. 에리카가 여기서 베개 영업을 하여 손실분을 모두 배상하면 언제라도 나갈 수 있습니다."

 "그, 그건 감금인거 아냐?!"

 "아닙니다. 평범한 노동이죠."


 소년은 손에 든 스마트폰을 들고 털썩 주저앉는다. 에리카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곤 호들갑스레 놀라는 척 한다.


 "대단하네, 너. 저 아저씨 원래는 아무 말도 안해주는데. 너 굉장한 집 자식이구나?"


 에리카는 소년의 다리 사이, 바짓섶을 발바닥으로 살짝 건드리며 문지른다.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 나를 엉망진창으로 범하고 싶어서 온거잖아?"


자신의 다리 사이를 부드럽게 건드리는 에리카의 발. 그 교묘한 발짓에 소년은 이를 악물고는 어쩐지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얼굴로 고개를 든다.


 "나... 나는 이럴 생각으로 온게, 아냐, 에리카!"

 "아, 네, 네. 동정 단골 대사네요. 그럼 어떤 태그 야동 보는지나 말해. 말하면 웬만하면 다 해주니까. 아니, 해야만 하니까."

 "나랑 같이 도망치자!"

 "뭐?"


 소년이 에리카의 종아리를 팔로 끌어안듯 감싸쥐며 매달린다.


 "나랑 같이 도망치자, 에리카! 너, 너는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네 팬이야...! 널 누구보다 위하고 있어!"

 "......"


 에리카는 어쩐지 먼 산을 보는 듯한 눈이 되었다가 활짝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렇게 소중하게 여겨주시는 팬이 계시다니 에리카, 기뻐요-☆"


 마치 갓 데뷔했을 때처럼 산뜻한 미소. 그 미소에 소년은 오히려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고만다.


 "하지만 에리카는 모두의 것이니까-☆

 아이돌은 소속사의 귀중한 자원이니까-☆

 영업손실분을 메꾸기 전까지는 절대로 나갈 수 없으니까요-☆

 여기서 도망치려 했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활기차게 미소짓고 에리카는 하아아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뭘 하고 싶은지 말해주세요, 팬님."

 "......한시간 동안 한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어플."

 "응?"


 에리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년을 내려다본다.


 "그런 취향이구나. 음... 한시간 동안 한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어플. 흥미롭네."


 에리카는 눈알을 위로 굴리며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배당하고 조종당하는 연기를 하라는거지?"

"......나에게는 한시간 동안 한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어플이 있어."

 "좋은 설정이야. 그 어플에 대해 설명해줘. 거기에 맞춰 내 나름대로 움직여볼테니까. 연기가 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지적해줘."

 

 연기파 아이돌 에리카.

 노래 실력은 그저 그렇지만 연기에 강해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신인.

 에리카는 마치 배우처럼 진지하게 소년을 대하고 있었다. 소년이 감독이라도 되는 것마냥.


 "아니야! 진짜로 나한테는 한시간 동안 한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어플이 있다고!"

 "네에, 네에, 감독. 그래서 그 어플은 어느 정도로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닌 이상 전부 명령할 수 있어. 자해해라는 명령까지도."

 "아니. 그건 아니지. 거기까지 연기할 수는 없지. 내가 다치는 쪽은 NG."

 "......믿어주지 않는구나."

 "어? 잠깐만. 이거 이미 상황극 시작된거야? 스톱, 스톱, 조금 더 스토리를 짜고 시작하지? 안그러면 돈 아까울걸, 너?"


 소년은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나며 에리카를 바라본다.


 "어떻게 하면 믿어줄거야? 내가 정말로 사람을 지배하는 어플을 가지고 있단걸?"

 "......이러면 곤란한데. 현실과 가상은 구분해야지."

 "진짜라니까."

 "하하. 그럼 저 남자에게 명령해봐."


 에리카는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를 터트리고는 주방쪽으로 간다. 냉장고에서 맥주병을 꺼내더니 그 병 주둥이 부근을 싱크대에 내려친다. 쨍그랑하는 소리가 나며 맥주병이 깨진다. 주둥이가 날카롭게 깨진채 거품을 내뿜는 맥주병. 에리카는 그 병을 가지고 와 소년의 손에 쥐여준다.


 "이 병으로 자해해라고 말야."

 "에리카..."


 소년이 눈물을 머금은 얼굴로 에리카를 올려다본다.


 "나와 같이 도망쳐주기로 결심했구나? 난 에리카를 믿었어..."

 "......???"

 "응. 에리카가 원하는대로 할게. 난 에리카를 구하고 싶으니까."


 소년이 깨진 맥주병을 들고 현관쪽으로 걸어간다.

 그 자리에 서 있는 험악한 남자에게 소년이 맥주병을 들려준다. 그리고 명령한다.


 "그걸로 네 목을 찔러서 자해해라.

 네 목숨으로 에리카님께 속죄해라."

 "알겠습니다."


 뭣!?

 에리카가 경악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본다.


 마치 텔레비전 호러 드라마의 한 광경같은 풍경이.

 현실감이 없는 풍경이 에리카의 눈 앞에 펼쳐졌다.


 인간의 목에서 피어나는 붉은 피안화.

 솟구치는 붉은 분수. 새하얀 현관벽을 붉게 물들이는 터진 버찌즙들.


  ".......어?"


 안색이 새파래진 채 파들파들 떨고 있는 에리카. 그녀를 향해 소년이 몸을 돌린다.


 "봤지, 에리카? 나는 한시간 동안 한 사람을 지배할 수 있어."


 붉은 피를 뒤집어 쓴 채 소년은 미소지었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도망가자. 누가 쫓아와도 안심이야."


 그 미소는,


 "내가 에리카를 반드시 지켜줄게!"


 악마의 미소를 닮아있었다.


 



세뇌어플과 얀데레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