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불면증에 시달리던 A가 드디어 해결책을 알아냈다고 했다.

초저주파를 이용하는 방법인데, 자동차나 지하철에 탔을 때 졸음이 찾아오는 원리랜다.

어제 시험해봤더니 10분 만에 잠에 들 수 있었다며 행복해하는 A를 축하해주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 A를 다시 만났으나 여전히 다크서클이 눈밑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잘 잘 수 있다더니, 다크서클은 바로 안 없어지나봐?"

"아.. 잠엔 잘 드는데.. 뭔가 계속 피곤하네.."

A는 아마 자는 내내 초저주파를 계속 틀어놔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럼 20분 정도 지났을 때 꺼지도록 설정하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이게 꺼지면 바로 잠이 깨버려서 어쩔 수가 없어.
이렇게라도 자는 게 불면증에 시달리던 때보다는 낫지 않을까?" 라며 찡그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날은 A가 워낙 피곤해보이는 터라 간단히 식사만 하고 헤어졌다.

뭔가 전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느낌이었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또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A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몸이 뭔가 이상한데.. 만나서 얘기 좀 들어줘."

쇳소리가 잔뜩 섞인 목소리에서 심각함이 느껴져 당장 A가 말한 카페로 갔다.

카페에 도착했으나 A가 보이지 않아 밖에 나와서 A한테 전화를 걸었다.

20초 정도 연결음이 울렸지만 받질 않아서 뭐야 하며 전화를 귀에서 뗐을 때

카페 옆 골목에서 익숙한 A의 벨소리가 흘러나왔다.

불러놓고 카페에도 없고 전화도 안 받고 뭐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담배를 피우며(A는 비흡연자였다.) 고양이를 발로 짓이기고 있는 A가 보였다.

'야!!' 하고 소리지르며 뛰어가 A를 말렸다.

A는 흐릿한 눈을 하고 있다가 이내 초점이 돌아왔다.

"야 지금 무슨...."

소리치며 화를 내려고 했으나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 A를 보고 일단 A를 데리고 카페로 들어갔다.

"내가 요즘 정말 이상하다.."로 시작한 A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가끔 방금 같은 이상한 행동을 한다.(흡연, 동물 학대, 절도, 살인충동 등)

-근데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했다는 느낌이다.

-분명 내가 했다는 기억은 있는데, 그 행동을 했을 때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느낌이랑은 다르다. 필름이 끊겼을 때의 내 행동을 남에게서 들으면 내가 했다는 느낌이 있다.

-마치 내 몸을 누군가 마음대로 썼고, 나는 그 기억만 잃지 않는 느낌이다.


"너 요즘 잠은 잘 자?"

"응.. 잠은 자는데 오히려 불면증 때보다 더 피곤한 느낌이야."

"그 초저주파인지 뭔지는 아직도 듣고 있는 거야?"

"응.. 혹시 그것 때문인가 싶어서 안 써보려고 했는데 안 쓰니까 1분도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병원은 가봤냐? 의사가 뭐래?"

"전혀 이상이 없고, 수면제 처방이 안 된대.. 수면부족증상이 없어서 악용 소지가 의심된다고.."

"...야, 일단 우리집에서 당분간 같이 있자. 무슨 일 날까봐 걱정된다. 그 초저주파도 듣지 말고 버텨봐, 그러다 쓰러지면 병원에서 치료해주겠지. 차라리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

"..."

"..."

"야, 왜 대답을 안 해?"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말을 하다가, A가 대답을 하지 않아 고개를 들었더니


A가 이빨이 다 보이도록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아주 낮고 낮은 목소리로

"싫어."

라고 말하고는 카페를 나가버렸다.

너무나도 기괴한 상황에 얼어붙었던 나는 잠시 후 카페를 나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A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 뒤로 A와는 연락이 전혀 되지 않았다. 찾아간 A의 집에도 A는 없었다. A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어제 A와 내 동창이었던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야 어제 A랑 진짜 너무 똑같이 생긴 사람을 봤거든? 혹시 A인가 싶어서 말을 걸려고 했는데, 

목소리도 그렇고 말투나 행동이 아예 다르더라고. 그냥 닮은 사람인 것 같아. 근데 어떻게 그렇게 닮을 수가 있지?"


나는 고민 중이다. 찾아가야 할지, 찾아가더라도 예전의 A로 돌려낼 수 있을지, 지금의 A는 도대체 누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