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제정신이냐?"


"예?"




멍청한 목소리로 되묻는 청년을 향해 노인의 늙은 주름이 힘있게 꿈틀거렸다. 열도의 명망높은 전前 트레이너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제자에게 조금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재작년 술자리에서 내가 했던 말, 기억하냐."


"당연히 기억하죠. [회색털 우마무스메는 집착이 강하다]."


"그걸 아는 녀석이 회색털 우마무스메하고 계약을 맺어!"


"아니, 그냥 술김에 하신 농담 아녔습니까? 것보다 집착이란게 꼭 나쁜건 아니잖아요. 레이스에 대한 승부욕이라거나ㅡ"


"이 멍청한 놈!! 생각이라는게 있는...!"




하던 말을 끝마치지 못한 스승님께서는 얼굴을 쓸어내리곤 깊은 한숨소리를 내셨다.


뜬금없는 책망에 나 역시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설마 오구리 캡이 마음에 안드신걸까.


2년 간의 여정을 되짚어봤지만... 솔직히 어느 부분이 마음에 안드시는건지 잘 모르겠다.


타고난 피지컬과 천부적인 테크닉. 


거기에 심성도 착하고, 매사에 순종적이다. 


신입 트레이너인 내게는 과분하다못해 황송할 수준의 담당이라고 할 수 있다. 


흠이라면 그녀가 아니라 신입 트레이너인 내 쪽에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들고있던 맥주잔을 내려놓기도 전에, 목소리를 낮춘 스승님께서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만큼 작게 읇조리셨다. 




"너도 트레이너 공부는 질리도록 해봤을테니 잘 알고있겠지. 우마무스메란 종족을 다른 말로 뭐라 부르는지."


"기벽의 종족."


"그래, 알긴 아는구나."




모를 수가 없다. 100번도 넘게봤던 기본서에 질리도록 나와있던 내용이었으니까.




[모든 우마무스메는 기벽을 가지고 있다.]


[기벽은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과 같으며, 강한 우마무스메일수록 그 증상이 심해진다.] 




생각해보면 오구리 캡의 기벽은 정말 다루기 쉬운 편이었다.


어마무시했던 식탐은 점심마다 직접 만든 수제 도시락을 주기 시작하자 눈에 띄게 줄었고


첫 만남 때 서먹했던 거리감은 당장 내일 바닷가 여행을 약속 잡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종종 까다로운 기벽으로 트레이너와 마찰을 일으키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쪽은 정말이지 기벽이랄 것도 없는 셈이다.




"그럼, 회색털 우마무스메의 기벽은 뭐일 것 같으냐?"


"집착이라 하셨으니... 먹을 것에 대한 집착 아닙니까? 확실히 오구리 그 녀석이 먹는거 하나는-"


"사랑."


"예?"


"회색털 우마무스메의 기벽은, '사랑에 대한 집착'이다."








불어오는 바람에서 짜디 짠 소금맛이 느껴진다.


앞을 보면 청량한 색깔의 파도가 해변가를 향해 철썩이고 있었다.


카사마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해변.


오구리 캡의 팬이 소유하고 있는 개인 사유지를 빌렸기에, 드넓은 해변가에는 나와 오구리 밖에 없었다.




"바다..."




그리고 들려오는 짧은 중얼거림.


시선을 돌리자 오구리 캡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두 눈을 감은 체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도 그랬지만 오늘따라 더욱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그 녀석들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목숨 그 이상이야.]


[그리고 그 감정은... 한낱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게 아니다.]


[절대로 그 녀석의 '사랑'을 자극하지 마.]




'그렇다기엔 사랑은 커녕 그럴 낌새도 안보이는데요...'




지금도 바닷바람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는 오구리의 모습은 어제 들었던 스승님의 말씀과는 커다란 괴리감이 있었다.


애초부터 오구리는 내게 별다른 감정이 없는게 아닐까?


사랑이라는게 그리 쉽게 생기는 감정도 아니고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빌려온 파라솔을 펼치던 중,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팔을 툭 하고 건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옆을 보자 그거면 되었다는듯 베시시 미소짓는 오구리가 보였다.


그 오구리 캡이 이런 장난을 치다니. 정말 어지간히도 즐거운 모양이다.


나 역시 입가에 웃음기를 띄우며 아직도 이쪽을 보고 있는 오구리에게 넌지시 운을 띄웠다.




"바다에 온게 그렇게 좋아?"


"으응?"


"아니, 계속 웃고 있길래."


"그런가."




왜인지 들뜬 기색이 된 오구리가 몸을 돌려 해변가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들고있던 파라솔을 내려놓고 살랑거리는 꼬리를 따라 걷자, 얼마 안가 걸음을 멈춘 오구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트레이너라서 그런 것 같다."


"...?"


"트레이너와 함께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그렇구나."




나라서 그렇다니. 이건 또 무슨 뜻일까.


표현이 서툰 오구리는 가끔 이런 식으로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하곤 했다. 




"머, 먼저 가보겠다 트레이너!"




나쁜 뜻은 아닌 것 같아 제멋대로 수긍하는 사이에 떨리는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린 오구리 캡이 순식간에 저 멀리 달려나갔다.


오늘같이 놀러온 날에도 달리기 훈련이라니.


그 성실함에 감탄하며 나 역시 파라솔과 준비해둔 도시락을 세팅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푸르렀고, 바다는 청량했다. 


어쩐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날이다.


어젯밤 스승님의 걱정은 그저 기우에 불과했던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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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리 캡과 계약한 제자를 책망하는 트레이너의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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