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4월 29일..


중국의 한 공원..


당시 폭주족처럼 중국대륙 절반을 휩쓸고있던 일본 제국은 일왕의 생일잔치이자, 제 1차 상하이사변의 승전기념식을 중국의 한 공원에서 하게 되고..


그 공원에 모인 인파들 중 한 청년은 그 주위에서 보자기로 싼 물건 한아름을 들고 연신 낡은 회중시계를 바라보고있습니다.


이 청년이 회중시계를 닫던 그 순간, 근처에서 환호성이 들리며 일왕이 나타납니다.


이윽고 그 청년의 앞으로 일왕의 퍼레이드행렬이 지나가자 어금니를 꽉 물고 들고있던 보자기에서 물통을 꺼내어 일왕에게 투척을 하기 직전 청년은 눈을 감고 지난 몇시간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합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시계와 선생의 시계를 바꾸시지요."


청년의 앞에있는 남자는 말합니다.


"왜 나의 낡은 시계와 당신의 새 시계를 바꾸고자 하는것이오?"


청년은 다시 말합니다.


"이 시계는 선서식 이후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저와 바꿔주십시오.  제 시계는 앞으로 몇시간밖에 쓸 일이 없으니까요."


식장으로 가던때도 생각합니다.


시계를 바꾼 남자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청년은 자신에게 남은 돈을 전부 자신과 시계를 바꾼 남자에게 주었습니다.


그 남자는 사양하며 받지않으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이 돈을 다 드린 후 자동차 값을 해도 5~6원이 남습니다" 라며 극구 사양하는 남자에게 돈을 주고 식장으로 출발하게되죠.


과거회상을 마친 청년은 어금니를 악물었고,


"대한독립만세!"


라는 함성과 함께 물통을 일왕에게 투척합니다.


그 물통은 다름아닌 폭탄이었고..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 아비규환의 현장..


청년은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일본군 헌병이 자신에게 뛰어오는것을 노려보며 서있었습니다.


일본군 헌병은 그 청년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며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무려 5월 25일까지 한달여를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을 하고 5월 25일 법정에서 청년에게 사형을 선고하게됩니다.


당시 재판장은 사형선고를 내리기 직전 청년에게 마지막으로 남길말은 없는지 물었고,


청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형은 이미 각오했으므로, 하등 할말은 없다"


사형선고 후 청년은 11월18일 오사카 일본육군 위수형무소로, 같은 해 12월 9일 가나가와현 일본 육군형무소로 이감되었으며, 동월 19일 가나가와현 일본 육군 9사단 형무소 공병작업장에서 사형이 집행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청년은 바로..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윤 봉 길 의사"


입니다.


1932년 4월 29일은 윤봉길의사의 홍커우 의거일입니다.


우리 모두 잊고지냈지만 이런 독립운동가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