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 본 적 없어?"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나는 깜짝 놀라 정하를 바라보았다. 정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어떻게든 빠져나갈 생각을 했다. 영겁 같은 찰나가 지나가고 나는 정하의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아니 없는데..?”

음 그렇구나. 왠지 낯이 익어서 혹시 어렸을 때 봤나 했지

아 그렇구나

 

대화가 어정쩡하게 끝이 나자마자 타이밍 좋게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2교시는 국어야. 교과서 없으니까 나랑 같이 보자.”

그래, 고마워

 

책을 펴놓고 선생님을 기다렸지만 10분이 지나도록 선생님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끼리 속닥거리던 소리는 어느새 웅성거리는 소리로 바뀌었고 웅성거리는 소리는 어느새 서로 떠드는 소리로 바뀌었다.

 

, 강시후 너가 교무실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수아가 말했다. 나도 이상함을 느껴 슬슬 교무실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긴 했다.

 

가봐야 할 거 같긴 해. 너무 안 오신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친구들한테서 야유가 쏟아졌다.

 

~ 선생님 왜 모시러 가냐~” “그냥 앉아있어라~”

 

나는 친구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준 후 교실 밖으로 나섰다. 그런 나를 수아가 뒤따라서 나왔다.

 

넌 왜 와?”

너 혼자 가면 심심하니까?”

차암~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아야! 너 죽을래?”

 

수아에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때리고 난 교무실 문을 두들겼다.

 

.

 

마침 문이 열리며 국어 선생님이 나오셨다.

 

아 시후야 마침 잘됐다. 선생님이 지금 일이 생겨서 오늘 수업은 자습이야~”

? 일단 알겠습니다.”

 

오늘 선생님들이 많이 바쁘시네라는 생각을 하며 뒤 돌았는데 바로 뒤에 수아가 서 있었다.


깜짝이야. 왤케 붙어있는 거야!”

 

나는 당황하며 수아에게 물었다.

 

참나, 자기가 뒤돌고서는 왜 나한테 난리람? 근데 국어 쌤 어디 가시는 거야?”

뭐 일이 생기셨다고 자습하라는데? 애들한테 얘기해야지 뭐

엥 국어 쌤도? 오늘 무슨 날인가 보네?”

그러니까. 빨리 애들한테 가서 전달하자

 

나와 수아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반으로 돌아갔다. 반으로 돌아가던 중 수아의 손이 자꾸 내 손 등을 스쳤고 나는 손등이 스치는 것을 피하려고 스칠 때마다 옆으로 옮겨서 걸었지만 내가 옆으로 갈 때마다 수아도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보니 나는 점점 벽 쪽으로 밀리게 되었고 참다못한 나는 수아에게 말했다.

 

야 너 지금 일부로 그러지?”

? 뭐가?”

자꾸 나 벽 쪽으로 밀고 있잖아. 왜 그러는 거야?”

? 그렇네! 미안!”

너 오늘 좀 이상하다. 아까부터 왜 그래?”

뭐가? 나 더 예뻐졌나?”

 

나는 혀끝까지 맴도는 욕설을 애써 누르며 말했다.

 

너 아침부터 사람이 좀 달라진 거 같아. 너랑 있으면 내가 지금 온탕이랑 냉탕이랑 왔다 갔다 하는 거 같아.”

... 그런가..?”

너 설마...”

 

난 걸음을 멈추고 수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아는 당황한듯 내 눈을 피했다.

 

..?”

생리하냐?”

아이씨!”

 

수아는 내 팔을 퍽 소리 나게 때리더니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팔에 멍이 들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며 교실로 뒤이어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이 없으니 반 분위기는 시장통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반이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다른 반에서 우리 반을 신경조차 안 쓴다는 것이다. 보통 이 정도로 시끄러우면 다른 반 선생님이 와서 조용히 시킬텐데 지금은 아무도 우리 반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마치 우리 반만 없는 것처럼.

 

나는 교실로 들어가서 반 아이들에게 2교시도 자습이라고 말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자리에 앉자 정하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여기 선생님들을 엄청 바쁘신가 봐 계속 자습을 주시네??”

오늘 좀 바쁘신가 봐 원래는 이렇게 연달아서 자습이 없는데

흐음~ 그렇구나.”

 

내 대답을 들은 정하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너도 타로 볼래?”

오 진짜? 나도 궁금하긴 했어.”

그럼 머릿속에 질문을 하나 생각해봐

 

난 머릿속에 내가 여자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대답했다.

 

. 했어

 

정하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검은 천위에 타로를 펼치고 말했다.

 

그럼 그 질문을 생각하면서 카드를 3장 뽑아봐

 

정하의 말을 듣고 나는 펼쳐진 타로 더미에서 카드를 3장 뽑았다. 정하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나머지 카드들을 정리한 다음 내가 뽑은 카드들을 하나씩 뒤집었다. 정하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내가 뽑은 카드들을 쳐다보았다.

 

, 되게 신기하다.”

왜 이게 무슨 뜻인데?”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정하에게 물었다.

 

너한테 안 물어봐도 질문이 뭔지 알 거 같은데? 너 연애하고 싶구나?”

?”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본 건지 정하는 내가 뽑은 카드만으로 정확하게 내 질문을 맞췄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아?”

~ 카드를 보니까 좀 있으면 여자친구가 생긴다네?”

? 진짜?”

 

?! 강시후 여자친구 생긴다고??”

 

뒤에서 수아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모두 순간적으로 수아를 바라보았다.

 

야 네가 왜 반응하냐?” “너 시후 좋아하냐?” “갑자기 풀악셀 뭔데?”

뭐래! 저런 애가 여자친구 생긴다는 게 어이없어서 그런 거지!”

 

수아는 얼굴이 붉어져서는 자리에 다시 앉았다. 나는 얼굴이 붉어진 수아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타로카드로 눈을 돌렸다.

 

그래서 어떻게 내 질문을 아는 거야?”

아 카드가 말하는데 네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라고 나와.”

 

정하가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 진짜? 괜히 물어본 거 같다...”

 

나는 부끄러워하며 정하에게서 눈을 떼고 수업을 들을 준비를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정하가 입맛을 다시는 것도 모른 채.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갈 준비를 하던 나에게 수아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수업 끝났으니까 게임 한 판 어때? 모처럼 달려야지!”

아 미안 오늘 담임 쌤이 정하랑 같이 집에 가라고 해서 정하 집에 데려다 줘야 할 거 같아.”

... ..? 너가 얘를 왜 데려다주는 건데?”

정하가 우리 아파트에서 산다길래 선생님이 당분간 정하 등․하교를 같이해달라고 부탁하셔서 어쩔 수 없어.”

? 저번 주에 이삿짐 차가 들어오는 걸 못 봤는데 이사 왔다고?”

 

~ 그건 사실 원래 부모님이 한국에 들어오면 살려고 예전에 사뒀던 집이라서 그래. 그래서 내가 한국에 왔을 때 간단하게 짐만 챙기고 들어온 거고.”

 

수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물어보자 옆에 있던 정하가 간결하게 대답해주었다. 대답을 들은 수아도 금방 이해를 한 건지 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럼 나도 오늘은 그냥 집에 가야겠다. ! 강시후 나도 같이 갈게.”

뭐 그래라

 

나는 가방을 챙기고 정하와 수아와 함께 학교를 나섰다.

 

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아, , 정하 이렇게 걸음을 걷게 되었다.

 

그럼 너는 원래부터 외국에서 살았던 거야? 한국말을 되게 잘한다.”

그건 아니고 어렸을 때 한국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외국으로 나갔어.”

~ 그렇구나. 근데 어쩌다가 너 혼자 한국에 들어오게 된 거야?”

원래는 내년에 부모님이랑 같이 들어오려고 했는데, 그냥 내가 1년 먼저 들어와서 산다고 말씀드렸어. 부모님은 지금 외국에서 일하고 계시고!”

너 대단하다! 그럼 집에서 혼자 밥 먹고 사는거야?”

 

나랑 정하가 대화를 나누던 중 옆에서 수아가 끼어들었다.

 

야 강시후! 생각해보니까 우리 수행평가 있지 않냐? 너 그거 다했어?”

아 맞다! 생각해보니까 우리 수행평가 있었지! 아직 시작도 못 했는데 큰일났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그럼 내가 저녁에 연락할 테니까. 우리 집으로 와라 내가 도와줄게.”

? 내가 너희 집에 왜가. 넌 다했어?”

난 다했으니까, 널 도와주겠다는 거잖아!! 왤케 말이 많아 도움받기 싫어?”

 

생각해보니 수아는 항상 수행평가에 대해서는 준비가 철저한 편이었고 그에 걸맞게 항상 점수도 잘 받는 편이었다.

 

나야 고맙지~ 그럼 저녁에 연락해! 바로 너희 집으로 달려갈 거니까.”

오키! 그럼 연락할게~! 좀 있다 봐!”

 

얘기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아파트 정문에 도착하게 되었고, 수아는 우리랑 헤어지게 되었다. 멀어지면서도 계속해서 손을 흔드는 수아를 바라보며 나는 수행평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저기... 둘이 사귀어?”

 

그런 내 생각을 끝맺는 것은 정하의 질문이었다.

 

..? 갑자기 왜?”

그냥 둘이 많이 친해 보이길래. 그리고 딱 봐도 느껴지던데? 둘이 연인 같은 거?”

전혀 아니야~ 다들 그렇게 물어보기는 하는데 그냥 수아랑은 많이 친할뿐이야.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은 학교같은 반이라서 미운 정 고운 정 생긴거지 뭐.”
~ 그렇구나. 재밌겠다.

? 뭐라고?”

?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시후는 이상형이 어떤 여자야?”

 

수아가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또다시 푸른 눈이 날 바라보자 난 괜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냥... 나만 바라봐주면 좋을 거 같아..”

아 진짜? 너무 '낭만적'이다~ 그럼 외적인 요소는 신경 안 쓰는 거야?”

 

정하가 나에게 더 붙으며 물었다. 정하가 나에게 더 붙자. 학교에서는 맡지 못했던 달콤한 향기가 내 코를 아찔하게 스쳐 지나갔다. 농익은 복숭아 같은 달콤한 향기, 당장이라도 한 입 베어 물고 싶어지는 것만 같은.

 

... 그치.. 난 그냥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 말은 들은 정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고 난 그런 정하를 보고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정하와 거리를 두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나는 우리 집 층수인 13층을 눌렀다. 그런 나보다 2초 늦게 정하도 14층 버튼을 눌렀다.

 

뭐야? 우리 집 위가 너희 집이었어?”

 

나는 굉장히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 원래는 다른 사람한테 집을 빌려주었다가 이번에 내가 오면서 그분은 다른 곳으로 가셨어.”

... 그럼 내쫓은 거야??”

아니~ 그렇게 심한 짓은 못하고 그냥 다른 집을 하나 소개해드린 거지~”

너희 집 되게 부자인가 보구나...”

 

남다른 스케일에 스스로 작아지는 나를 느끼고 있으니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도착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정하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정하야 내일 보자~”

! 알겠어~”

 

정하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